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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인하 스토리 스포일러에 주의해주세요 *
별의 탄생
w. 하룻
완전히 바뀌기를 원했다. 더럽고 추악한 과거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오인하라는 이름에 맞춰 그 끔찍한 과거가 모두 떠내려가기를 원했다. 유필웅이라는 이름도, 그 이름을 지어준 작자를 닮은 자신도. 그러니 모든 것을 바꿔주겠다는 제안은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거래 성사는 당연한 결과인 것처럼 이뤄졌고 오인하는 정말 많은 것이 바뀌었다. 머리카락은 밝은 금발, 눈은 맑은 하늘을 닮은 파랑, 성격은 털털하고 시원하게, 그래서 때론 싹수도 없어 보이는. 만들어진 캐릭터에 불만을 품어선 안 되었다. 만들어달라고 요청한 건 자신이었으니까. 그리고 과거의 자신이 될 바엔 그런 캐릭터로 사는 게 훨씬 나았다. 적어도 베스타의 오인하는 사람을 죽이진 않을 테니까. 당당히 만들어진 무대에 올라 만들어진 캐릭터를 연기했다. 한 명의 스타로, 하나의 별로, 빛나는 무대를 만들었다.
그러나 무너진 무대가 오인하에게 말한다. 너는 정말로 빛났던가. 화장실에 쓰러진 서혜성이 오인하를 비꼰다. 너는 그 모습에 정말로 만족하는가. 힘없이 늘어진 장세일이 오인하를 책망한다. 너는 정말로 과거와 완전히 바뀌었는가. 모든 것이 환영이고 환청임에도 오인하는 떨리는 숨을 멈출 수 없었다. 답을 알고 있음에도 차마 입에 올리지 못했다. 그것을 입에 올리면 그동안 삼켜왔던 것들을 모조리 토해낼 것만 같았다. 그것들을 전부 토해낸다면, 저 깊은 심연 속에 감춰둔 오래된 공포가 보일 것이다. 작은 창문 너머로 마주친 거대한 공포. 절대 벗어날 수 없을 거라는 좌절. 내면의 어린 소녀는 차마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지는 못하고 그저 커튼 뒤로 몸을 숨긴 채 오인하를 보았다. 저 작은 창문 밖으로조차 나오지 못했던 소녀. 밖으로 나온 것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오인하였지 저 소녀가 아니었다. 소녀가 작은 목소리로 오인하에게 물었다. 자신은 평생 이 방 안에서 살아야만 하냐고. 어둠이 내리 앉으면 별은 결국 잠식될 수밖에 없냐고.
오인하는 생각했다. 정말 그러한가. 정말로 우리는 그저 집어삼켜 지기만 할 뿐인가. 오인하는 어둡기에 찬란하게 빛났던 별을 떠올렸다. 공포가 저를 좀먹고 좌절이 저의 무릎을 꿇게 할지언정 절대 그것에 지지 않던 별을. 그 별은 한때 추악한 인간들의 이기심에 빛을 잃을 뻔하였으나 결국 그러지 않았다. 감히 꺼트릴 수 없고 감히 누를 수 없는, 별이라는 단어 안에 다 담기지 못할 위대하고 경이로운 사람. 오랜 시간을 사랑해왔고 앞으로 사랑할 사람, 민주영. 민주영은 오인하에게 있어 태양과도 같았다. 절대 꺼지지 않을 빛으로 쉬이 가라앉지 않는 어둠을 잠재우는 존재. 설령 떠오른 곳이 다 무너진 무대 위일지라도 그곳에서 헤매지 않도록 홀로 고고히 빛을 냈다. 그런 민주영이, 태양이, 무대 위에 서서 오인하에게, 샛별에게 속삭였다.
별아, 어둠을 무서워하지 말아라. 빛은 어둠에게 굴한 적이 없었으니.
아. 그래. 그랬다. 그랬었다. 오인하는 창문을 열어 소녀의 얼굴을 마주했다. 겁에 질려 웃음조차 새지 않는 소녀에게 오인하가 답했다. 별은 스스로 빛날 수 있어 별이란다. 그 어떤 어둠이 찾아와 그 작고 여린 빛을 삼키려 할지라도 별은 결국 그것을 이겨낼 것이다. 망설이는 사이에 누군가가 또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살아가는 이상 그 지옥같던 삶이 계속될 거라는 공포, 신고한 게 자신임을 들키면 되려 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 그런 수많은 공포를 딛고서 결국 그 남자를 고발한 건 자신이었음을 상기하라. 그것은 용기다. 함부로 낼 수 없는 용기다. 창문 너머로 마주한 공포만을 기억하지 말라. 그렇게 용기를 냈기에 얻을 수 있었던 것들을 떠올려라. 이 작은 창문을 열고 나온다면 너는 바로 알게 될 것이다. 태양이 제게 속삭여줬던 것의 뜻을 몸소 체감할 것이다. 너는 공포라는 어둠이 짓누르기엔 너무나 원대한 빛을 지니고 있음을 말이다.
소녀는 창문을 깼다. 벽을 부수고 커튼을 찢었다. 그리고 자신이 두려워하던 것들이 도사리는 밖을 향해 한 걸음 내디뎠다. 그곳은 무너진 무대가 있는 현장이었다. 천장으로부터 떨어진 잔해들이 바닥에 즐비했고 자욱한 먼지가 폐부 깊숙이 들어왔다. 그럼에도, 그런 곳임에도, 한줄기 내리쬐는 빛은 찬란하기 그지없다. 소녀는 다 부서진 무대를 보았다. 한때 제 세상의 전부라 생각했던 것의 잔해를 보면서 다짐했다.
새로운 무대를 만들리라. 자신은 끝의 끝에 가서야 스스로 빛내는 법을 알았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은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 태양이 제게 알려준 것처럼, 자신도 그들에게 알려줄 것이다. 자신들이 가진 빛을 마음껏 내뿜을 수 있는 무대를 만들 것이다. 오인하는 자신이 만든 무대를 상상했다. 우선, 화려한 조명이 무대를 비춘다. 각양각색의 별들이 빛을 깜빡이며 자기들의 목소리를 낸다. 수많은 군중이 환호성을 지르고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회장이 떠나갈 정도로 크게 박수를 친다. 이 모든 것들은 새로운 별의 탄생을 축복하는 소리다. 그리고 동시에 새로운 태양의 탄생을 경외하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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